얼마 전에 위즈덤하우스의 위픽 시리즈로 출간된 『파쇄』를 재밌게 읽고, 한참 전에 진주문고에서 구입했던 작가의 전작을 읽었다. 제목은 『상아의 문으로』.

 

 일단 난 내러티브가 확실하지 않은, 이야기 진행을 떠먹여주지 않는 것과 다른 차원으로, 시간에 따른 사건 전개가 희미한 소설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이 소설이 좋지 않았다. 나도 불면증을 겪고 있고, 매일 꿈을 잊어버리지 않는 수준으로 피곤하게 자는 사람이라 이 책이 내내 그리던 몽환적인 상황들이 그냥 지루했다. 차라리 그림이나 만화, 영상, 게임이었다면 어떻게 압도당하는 기분이라도 느낄 텐데, 글로는 한계가 있는 거다. 소설로 아무리 특이한 꿈을 묘사한대도 내가 어제 꾼, 스키장에 친구들과 놀러가서 마을버스 타고 유스호스텔 들어간 꿈이 더 기묘하게 느껴질 것이다.

 

 그리고 분량에 비해 등장인물이 턱없이 적다. 사실상 등장인물은 주인공 포함 두 명인데, 그 중 한 명은 중후반부에 등장하고 주인공과 크게 갈등하지 않는다. 예전에 어린 개가 숲 속에서 길을 잃고 야생의 생활에 적응해나가는 소설을 읽은 적 있었는데, 너무 재미가 없어서 절반 정도 읽고 덮어버렸다. 그나마 재밌는 부분은 강아지를 잃어버린 주인과 어미개가 나오는 부분이었는데, 분량이 얼마 되지 않았다... 그 책을 읽으면서 인물의 중요성을 크게 느꼈다. 16세기 극작가들 뺨치는 기막힌 내면 묘사 열 페이지보다 말 그대로 사람이 사람 뺨을 치는 한 줄이 더 강력한 울림을 준다는 것을.

 

 물론 내가 ADHD 약을 복용중이며 도파민에 관한 온갖 잡학이 떠도는 시대의 청년이라는 점을 감안할 필요는 있겠다. 내가 이 책을 싫어하는 이유는 그냥 재미가 없어서다. 솔직히 말하면 이런 책은 더 안 읽고 싶다. 국어사전에서 동음이의어 찾는 데에 심취한 배수아 같다고 생각해버렸다. 나는 이야기를 읽고 싶다. 자극적이든 자극적이지 않든 이야기를 읽고 싶다. 정유정처럼 알몸으로 춤추고 사람 몇 죽는 이야기가 아니더라도, 김사과처럼 영어 썼다가 엔터 다다닥 누른 글이 아니더라도 괜찮은데. 그런 글 쓸 수 있는 사람 많잖아요. (라고는 하지만 근래 제일 재밌었던 소설이 돈 드릴로 작품이라)

 

 사실 일본 여행에서도 책을 읽고 싶어서 전자 도서관으로 2023년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을 빌려서 읽었는데, 첫 번째 작품 말고는 재미도 없고 감동도 없고. 욕조에 거의 기대서 읽는 중이었는데 마지막 장에서 "어쩌란 거야!!" 소리가 절로 나오는 작품들이었다. 난 그냥 문학에 재능이 없는 모양이다. 학창 시절 내내 책 좀 읽을 줄 아는 놈처럼 학교 도서관에 박혀있었는데 결론이 이렇다니 서글프네. P-MODEL 노래 틀고 춤이나 춰야겠다.